편애가 아닌 하나님의 뜻

누가 봐도 ‘편애(favortism)’인데 부모들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항변 합니다. “같은 강도로 깨물면 아프겠지요! 그러나 어느 손가락을 살살 물기에 문제이며 편애는 가정 폭력 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최초의 편애 사건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버지 야곱의 에서사랑, 어머니 리브가의 야곱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왜? 에서를 편애했을까요!? 또한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을까요!?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두 자녀(창 25 : 21)를 얻을 정도로 가정적이고 자상해 보이는 이삭이였는데 말입니다.

배에서 나온 야곱과 에서는 성향이 전혀 다른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납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 : 27~28)

리브가는 야곱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에서가 축복기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야곱이 받도록 에서의 옷을 입히고, 양털을 붙이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에서가 사냥하러 간 사이 실행에 옮기는 지극히 야곱을 위한 헌신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에서 또한 아들인 것을 고려하면, 그 편애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눈먼 남편을 속이고, 발생할 모든 문제의 책임까지도 자신이 지겠다고 창세기 27장 13절에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내 말만 따르라고 하면서 야곱으로 죄를 짓도록 종용하는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창 27 : 1~17).

그런데 이삭과 에서가 이 사실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다면 아내 또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듣는 괴로움 속에 살았을 것이고, 몰랐다고 하더라도 야곱을 그리워하며 이삭과 에서에 대한 죄책감과 괴로움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이삭의 에서 편애는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해준 창세기 27장 24절~40절까지의 축복기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결과로 가정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야곱이 형인 에서의 축복을 빼앗는 데는 성공하지만, 분노한 에서가 아버지가 죽으면 야곱을 죽이겠다(창 27 : 41)는 말에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으로 도망시킵니다(창 27 : 42~45). 이것이 지극히 사랑했던 아들을 살아생전에는 볼 수 없게 되는 야곱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 속에서 여생을 살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야곱은 2명의 라헬을 위해 7년, 리브가를 위해 7년 그리고 6년의 수고를 더 거치고 2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어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귀향하지만 생존해 계신 아버지 또한 찾아뵙지 않음으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이 남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편애할 만큼 자식을 낳지 않는 세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심리학적, 가정학적 접근을 해 편애의 해악에 관한 이야기로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삭이 에서를,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60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쌍둥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쌍둥이가 태중에서 서로 싸우기에 리브가는 하나님께 어찌하면 좋을지 여쭙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네 태중에서 두 민족이 나누일 것이며,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할 것이며,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라는 응답을 받습니다(창 25:19-34). 리브가는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장남이 아닌 하나님이 택한 아들을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육체적 눈이 멀어 영적으로 어두워진 이삭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적 생각에 따라 에서를 축복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 행위 이기에 이것을 막은 것이라 볼 수 있며 에서는 당연히 집안의 장자를 사랑한 것 일 것 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자! 100세에 시력을 잃고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던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이후에 건강이 회복되었는지 80년을 더 살게 되었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말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내 생각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삶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이라는 수 없는 그림이 주는 잘못된 정보. 이때 야곱은 철없는 소년이 아닌 최대 77세 정도 장년의 나이였습니다. 목회자가 잘못된 설교를 통한 정보를 교인들에게 전달하여 각인시키듯 화가가 주는 잘못된 그림 정보들이 있습니다 설교나 그림이나 성경에 대한 오랜 묵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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