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된 설교에 의해 쒸어진 지독한 누명
성경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들 가운데 항상 첫 번째로 언급되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유는 그녀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이 체포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으로 제자들의 빈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 과정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되고, 봉인될 때도 자리를 지켰으며 그 이후에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향품을 준비하여 무덤을 찾았갔다가 무덤이 비어있고, 시신이 없어진 사실에 충격을 받아 울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첫 번째 만나 위로해 준 사람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 16:9).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른 이유는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주어 그녀가 고통에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마리아는 일생 동안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롤모델로서의 위치를 위치를 공교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91년에 제64대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성 클레멘스 성당에서 잘못된 성경 해석을 기반으로 한 설교를 하게됩니다. 이 설교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닌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설교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창녀 막달라 마리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여되고, 이것을 후대 사람들이 별다른 의견 없이 받아 드려져 그녀를 죄인이나 창기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와 유사한 설교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아전인수격 해석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극도로 거부하기를 원했던 자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선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막달라 마리아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 입니다. “그녀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공격하고 싶은 동조한 자들에 의해 막달라 마리아는 지금까지 그의 순결한 삶이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한 사람의 잘못된 설교가 후대에까지 영향력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로 예배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진리을 올바르게 전파하는데 큰 책임이 있습니다. 잘못된 설교는 사회, 문화,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림: The Magdalen at the Foot of the Cross by 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 1866–1884, from Walker Art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