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다윗의 모친은 누구인가?
개인적으로 “구약에서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인물이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저는 “다윗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윗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 가운데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프로이트나 칼융이 주창하는 트라우마로 이야기한다면 다윗은 정신적 상처(psychological trauma), 육체적 상처(physical trauma)가 있었을 법도 한데 그는 신앙으로 깨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교회 안에 지나치게 상담을 맹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도와 예배에 집중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상담은 참조나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 치료는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부모, 형제, 장인, 아내, 아들, 백성으로부터 버림 받은 경험으로 인하여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그의 밧세바 범죄 사건은 비난이 아닌 긍휼히 여김 받아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라고 그 대가를 치르며 회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윗 자신도 죄임을 깨닫고 스스로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왕을 벌할 위치의 사람이 없기에 자기 스스로 침상이 젖도록 회개한 것을 우리는 알면서 트라우마 뒤에 숨어 자신을 합리화하는 상처 때문이라는 비신앙적 태도를 고치지 않는 이상 치유는 요원해 보입니다.
성경은 선택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족보를 요약할 때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라고 소개하므로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의 사람임에는 분명한데 그의 모친에 대한 기록이 이상하리만치 이름도 그녀에 대한 언급조차도 미미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이 쓴 시편에 어머니를 “주의 여종”(시 86: 16, 116: 16)으로 호칭한 것을 보면 다윗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긴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었음에는 분명하고, 다윗은 그런 어머니를 닮은 듯합니다.
성경에 다윗의 어머니에 대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모아보면 그의 어머니는 일직 세상을 떠난 듯 보이며, 다윗이 쓴 시편 51편 5절을 통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자신의 출생이 환영받지 못한 출생아였음을 밝히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다윗이 쓴 시에는 ‘표제’가 붙어있고 그 표제는 그 시편의 저자나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그 시편이 사용되는 용도 등이 설명되어 있어서 그 시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시편 51편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다윗은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 나를 잉태한 것입니다(새번역).”라는 이 고백을 통해 자신도 결국 자기 부모님과 같은 죄를 저질렀음을 실토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내가 그렇게 혐오하던 죄 가운데 내가 태어났는데, 나도 그 죄를 저질렀구나!’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새는 집안에 종들에게 시켜도 될 일을 다윗에게 위험한 전쟁터에 가서 형들에게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를 전달하고, 천부장에게 “치즈 열 덩이를 주고” 형들의 안부를 살펴보고 안전하다는 증표를 가져오라고 시키기도 합니다(삼상 17: 17, 18).
어떤 학자는 성경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다윗의 어머니는 이방 암몬 사람과 관계가 있으며(나하스라는 이름 때문), 다윗은 이방 여자에게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이유는 다윗에게는 일곱 명의 형과 두 명의 누이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있습니다(대상 2: 16, 17). 그런데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아버지를 이새라고 말하지 않고 ‘나하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나하스’가 이새의 다른 이름 이거나 아니면 이새의 아내의 전남편일 것입니다(이 의견이 가장 가능성 높은 가정). 이새의 아내는 나하스와의 사이에서 두 딸 스루야와 아비가일를 낳은 후에 이새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다윗의 형들이 유다 건국의 개국공신으로 이름들을 올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오히려 누이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대상 2: 16, 17)
또한 시편 69장 8절에 이새의 집안에서 다윗은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라고 말하므로 형제들의 외면과 소외당했음을 알 수 있으며,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되고” 라는 표현은 형제들이 다윗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 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그 형제들, 특히 장형 엘리압으로부터 많은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삼상 16:6-13; 17:28).
특별한 이유가 없이 너무 어린 나이에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목양을 했을 리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소외당하고, 형들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너무 어린 나이에 혹독한 일인 들판에서 양을 치는 일을 했습니다. 시편 27편 10절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라는 표현을 보면 다윗은 차별받으며 성장한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고대 사회에는 가족의 의존성이 유달리 크고 강했으며 그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는 어린 다윗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충격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나섰을 때 사울에게 자신이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 27:34~36) 이라는 내용을 그냥 용맹한 청년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 다윗의 처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며 기름부음 받을 때의 나이가 15살이고 골리앗과 싸울 때의 나이가 20살로 본다면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삶을 희망적으로 살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상황과 환경 가운데에서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형들에게 귀여움받고 지내지를 못하고, 차별받으며 베들레헴 들판에서 하늘을 이불 삼고, 대지를 요로 삼으며 양 떼들을 돌보았습니다. 이 고난의 들녘이 어린 다윗에게는 인생을 배우는 교실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당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다윗을 기르시고, 가르치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신 것이고, 다윗은 그 교육의 현장, 예배의 들녘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 1, 2)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8: 2),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8:3) 라고 고백하며 영적으로 성장한 다윗의 영성은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 왕을 번뇌케 하였을 때 다윗은 수금(하프)을 연주하여 사울 왕을 낫게(삼상 16:14~23)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오늘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어도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것이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지만, 곳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는 다윗처럼 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