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실(過)

종교 역사를 뒤집은 루터의 공과 실(종교개혁 & 반유대주의) 동전의 양면처럼 역사 속 인물에게 공(功)과 실(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물을 평가할 때 그의 공과 실을 분리하며 평가하고 공으로 실을 실로 공을 깎아내리는 것은 바른 역사 이해라고 볼 수 없다고 봅니다.

반유대주의 또는 반유태주의는 영어로는 antisemitism이라고 하지만 셈족 전체를 겨냥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들을 목표로 한 차별과 증오를 말합니다. 반유대주의는 개인적인 증오에서 최악의 극단적 만행이 ‘십자군 원정과 유대인 학살’과 15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하며 저지른 유대인 학살(산 채로 불태우는 등)에 가까운 박해, 19세기 후반의 수년 동안 프랑스를 휩쓸었던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 사건(Drefus Affair)’ 나치의 ‘홀로코스트’입니다.

증오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건’으로 인해 악화를 피워내 중세에 와서 종교적 편견과 유대인의 생존본능으로 인해 자기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돈뿐이라는 사상이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인 가진 자에 대해 그리고 빌린 자의 반감까지 더해져 수천 년의 동안,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긴 증오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 가톨릭 신부였던 루터는 자연스럽게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두 권은 ‘친유대주의(That Jesus Christ Was Born a Jew) vs 반유대주의(On the Jews and Their Lies)’로 나뉩니다. 솔직히 루터가 반유대주의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받은 가톨릭 교육이 반유대주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종교개혁 초기 오히려 유대인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을 1523년 발행된 그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나셨다(TDas Jesus Christus ein geborener Jude sei, Augsburg 1523).”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유대인이었다면 이런 둔하고 버릇없는 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규제하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기독교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암퇘지가 되기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우리는 몇몇 유대인들을 그들 조상이 가졌던 참 신앙으로 이끌어 줌으로써 그들을 돕기를 원한다.”, “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는 그들을 기꺼이 우리의 형제로 여길 것이다.”, “유대인들 가운데 미래의 기독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친절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루터

그런데 그런 그가 왜 반유대주의로 돌아서서 역사의 오명을 남겼을까요? 그 이유는 종교개혁 당신 수 세기 동안 가톨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온 유대인들이라면 가톨릭과 싸우고 있는 자신의 편에 서 줄 것이라고 믿고, 유대인들의 협력과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 때문에 유대인의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적인 문제들로 인한 신학적 부닥침이 훗날 그들을 비판하게 되고 그들을 향한 반감이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루터교의 수장인 된 루터 그리고 루터교의 본산인 독일에서 루터의 영향력은 모든 크리스천에게 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루터와 등을 진 유대인의 박대는 훗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이론적 기초에 간접적으로 제공한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1543년 출간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Von den Juden und ihren Lügen, Wittenberg 1543)” 이라는 소책자에서 ‘유대교 회당을 불사르고, 유대인 가옥을 부수며, 랍비들의 가르침을 중지시키고, 독일 땅에서 유대인들을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유대인의 사당(synagogues)과 학교를 불 지르고, 타지 않는 것은 땅에 묻어 흙으로 덮어서 그 흔적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라. 이 일들은 우리들의 신 여호와와 그리스도교의 명예를 걸고 하라!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알면서 대중들에게 거짓말하며 저주하고 여호와의 아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을 모독하는 일을 방관하거나 용서치 않음을 여호와께서 보시도록 하라! 우리들과 나 또한 몰라서 과거에 유대인을 용납한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게 하라.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알았으므로, 만약 우리 앞에 있는 유대인들의 집과 존재의 권리를 보호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그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우리를 저주하고 악마화시키고, 욕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내가 충고하노니 그들의 집들을 모조리 다 파괴하라! 왜냐하면, 그들의 집은 그들의 사당과 같은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집 대신에 그들이 지붕 아래나 헛간에서 집시처럼 살게 하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자랑하는 바와 반대로, 우리나라의 주인이 아니며 그들이 여호와의 앞에서 우리에게 통곡게 하며, 그들이 추방되고 갇혀서 살아감을 인식시키리라! 세 번째, 우상 숭배를 하고 거짓말하고 저주하는 그들의 기도서와 탈무드에 관한 글들을 모두 압수하라.” -루터

“그와 같이 절망적이고 사악하고 맹독적이며 악마적인 것이 지난 1400년 동안 우리의 역병이요 병균이며 불운이었던 유대인의 운명이다. 자, 그럼 이 저주받고 거부당하는 유대민족을 어찌해야 하나? 우리의 이웃으로 눈을 돌려 프랑스나 스페인, 보헤미아 등지에서 유대인들을 어떻게 처리했나를 보고 보편적인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선 유대인이 고리대금으로 훔친 돈을 몰수하여 골고루 나누어 주는 대신 그들의 나라로부터 아예 추방해 버렸다.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유대인에 대한 신의 분노가 너무도 크기에 안일한 자비는 유대인을 더욱 간악하게 만들고 매질을 가해도 유대인은 조금만 나아질 뿐이다. 그러므로 모두 쫓아내어야 한다! 우리의 돈으로 거부가 된 유대인들이 온 기독교 국가들을 깔고 앉아 우리를 비웃고 조롱하고 스스로 대담함에 깔깔거리는 꼴을 언제까지 보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신에게 분노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그들의 매부리코로 새끼 돼지들처럼 킁킁대는 유대인을 보면서 사탄과 그의 천사 암퇘지들은 또 얼마나 흥겨워할 것인가?” -루터

후대에 루터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꼴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저주하는 3대 인물로는

첫 번째, 예수

두 번째,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게 한 교황(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PP. II는 제159대 교황/재위: 1088년 3월 12일 – 1099년 7월 29일 등 모든 교황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종교개혁 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을 이용하려 한 루터

아이러니하게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히틀러 보다 유대인들은 루터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인 히틀러의 1만 명의 친위대가 구·신교의 도움 없이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은 불가능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홀로코스트는 ‘기독교 안의 반유대주의로 인한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은 허물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평가에 있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공(功)이지만 반유대주의는 실(過)로 봅니다.

공을 실로 덮을 수 없고, 실을 공으로 덮을 수 없는 공과 실입니다!

*전에 써놓은 글의 재탕; https://www.facebook.com/immanuelph/posts/pfbid02zm6JAXHZomEE3C3XLrb6qYVk7LTRi6ZFt1GDNxmXLJTT8hiqBHrMqhwXL31qPdFPl

#종교개혁#마틴루터#기독교#독일#히틀러#유대인학살#반유대주의#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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